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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의 기술적 진보, 스토리텔링의 깊이, 그리고 멀티버스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작품입니다. 전작 ‘뉴 유니버스’에 이어 이번 작품은 단순한 속편이 아닌 ‘멀티버스 히어로 서사’의 결정판으로서, 수많은 세계의 스파이더 히어로들과 마일스 모랄레스의 자기 정체성 찾기 여정을 다층적으로 그립니다. 이 글에서는 스토리 구조, 철학적 메시지, 캐릭터 간 갈등, 시각적 예술성과 문화적 해석까지 포함하여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왜 시대적 걸작인지를 분석합니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마일스 모랄레스의 성장 서사: 영웅의 조건을 다시 쓰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중심은 마일스 모랄레스의 자기 선택과 정체성의 형성입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한 스파이더맨이 아닙니다. 멀티버스를 경험하며, 자신이 우연히 선택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주체임을 자각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멀티버스 내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는 모든 스파이더맨이 겪어야 할 고통(=캐넌 이벤트)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깁니다. 예를 들어, 삼촌의 죽음, 경찰 아버지의 희생, 연인의 상실 등이 그 대표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마일스는 “누군가를 잃는 것이 진정 영웅의 자격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운명이라 불리는 고정된 이야기 구조를 부정합니다.

    이는 단순히 마일스 개인의 고뇌가 아니라, 모든 서사 구조에 대한 반항입니다. 그는 '정해진 틀' 대신 '스스로 선택한 길'을 택하며, 영웅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결국 그는 운명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고,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첫 번째 스파이더맨이 되며, 히어로의 서사를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계보를 시작합니다.

    멀티버스 구조와 갈등: 규범을 강제하는 사회적 메타포

    멀티버스의 설정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철학입니다. 수많은 스파이더맨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러나 모두 같은 희생의 규범을 따르고 있다는 역설은 곧 다양성의 허상을 지적합니다.

    스파이더맨 2099(미구엘 오하라)는 그 중심에서 규율을 수호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 캐넌 이벤트를 무시했다가 자신의 세계가 붕괴한 경험을 토대로, “모두가 정해진 고통을 감수해야만 멀티버스가 유지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곧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개인의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논리와 닮아 있습니다.

    마일스는 이를 거부합니다. 그는 고통 없는 영웅도 가능하다는 믿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선택이 파괴가 아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을 내세웁니다.

    이 갈등은 결국 ‘질서 대 자유’, ‘전통 대 변화’라는 고전적인 구조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일스는 단순히 강한 영웅이 아닌, 자기 윤리를 가진 사상적 리더로 성장합니다.

    또한 영화는 각 멀티버스마다 고유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적용함으로써, 형식적으로도 '정해진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시각화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서, 주제와 표현이 완전히 일치하는 미학적 구조로 평가받습니다.

    시각적 실험과 문화적 코드: 정체성의 시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기술적으로도 혁신적인 작품입니다. 수작업 느낌의 프레임, 채도와 질감을 다르게 조절한 화면,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의 공존은 멀티버스의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구현합니다.

    특히 ‘그웬 스테이시’의 세계는 수채화처럼 번지는 감정과 색감으로 구성되어, 그녀의 내면 상태가 화면 전체에 반영됩니다. 이러한 연출은 캐릭터의 감정 상태와 배경을 일치시키는 감정 미장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흑인·라틴계 혼혈로서의 마일스의 정체성은 문화적으로도 깊이 있게 다뤄집니다. 브루클린의 거리문화, 가족 간 언어의 혼용, 어머니의 스페인어 표현 등은 그의 다중적 정체성을 살아있는 언어와 감정으로 구현합니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은 마일스에게 더 이상 이분법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흑인이자 라틴계, 학생이자 영웅, 순응자이자 혁신가로 존재하며, 이 복합성이야말로 현대적 정체성의 본질임을 보여줍니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한계를 넘은 작품입니다. 그것은 운명과 자유, 규범과 다름, 희생과 연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한 청소년이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닌, 영웅의 정의 자체를 다시 쓰는 이야기입니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모두가 정해진 길을 걷는 것”이 영웅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겠다.”

    이 영화는 시각 예술, 감정의 서사, 철학적 깊이, 문화적 맥락까지 모두 아우르며, 현대 청년과 부모 세대 모두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세대 간 대화의 통로가 됩니다.

    지금,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면 혹은 세상이 정해준 길이 나의 길인지 의문이라면—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기억하세요.

    “우연히 시작됐지만, 나는 내 이야기를 내가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