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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1월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단순한 뮤지컬 영화가 아닙니다. 전설적인 브로드웨이 원작을 바탕으로, 선악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권력과 진실, 우정과 선택, 여성의 자아 성장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아름다운 노래와 서사로 풀어냅니다. 녹색 피부로 세상과 불화했던 엘파바,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완벽을 연기한 글린다. 이 둘이 친구가 되고, 운명에 따라 다른 길을 가는 이 서사는 우정과 이별, 체제 비판과 주체적 삶의 선택까지 모두 담아낸 현대적인 판타지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위키드’의 등장인물 중심 해석, 세계관 재구성, 뮤지컬 넘버의 서사 기능, 그리고 영화적 확장력까지 총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영화 '위키드'
    영화 '위키드'

    엘파바와 글린다: 서로의 거울이 된 두 여성의 대조와 성장

    영화 ‘위키드’의 핵심은 단연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입니다. 이 두 인물은 외형, 가치관, 처한 위치 모든 면에서 정반대입니다.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녹색 피부를 지닌 아웃사이더입니다. 사회의 외면과 조롱 속에서 자란 그녀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그 진실성은 오히려 주변 세계로부터 외면당합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진실을 마주하길 바라는 도전적 이상주의자입니다.

    반면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아름다운 외모와 인기, 모든 것을 갖춘 인싸의 정석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이 삶의 최우선 가치이며, 그녀는 사회적 체계와 룰 속에서 살아가는 ‘안정지향적 인물’입니다. 겉보기엔 밝고 유쾌하지만, 내면은 불안정한 자아와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피로감으로 가득합니다.

    처음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점차 서로의 상처를 바라보고,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단순히 ‘성격 다른 두 친구’의 이야기가 아닌, 시스템 밖에 있는 자와 시스템 안에 있는 자의 관계, 나아가 진실을 말한 자와 침묵한 자의 윤리적 딜레마를 보게 됩니다.

    특히 엘파바가 ‘위키드’(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힐 때, 글린다는 그녀를 말리거나 지지하지 못합니다. 이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글린다의 침묵은 가해인가 방어인가’라는 윤리적 고민을 안기며, 단순한 흑백 구도를 넘어선 복합적 여성 서사를 완성합니다.

    ‘오즈의 마법사’ 세계관 재해석과 선악 해체 서사

    ‘위키드’의 매력은 기존의 동화적 세계관을 비틀며 정치적 상징성과 인간 심리의 복합성을 담아냈다는 점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그저 사악한 마녀로 등장했던 엘파바의 시점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함으로써, 이 영화는 역사와 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엘파바는 처음부터 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누구보다 마법의 본질을 이해하고, 권력자의 거짓에 맞서려는 양심적 지식인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외모와 성격, 체제 비판이라는 요소는 엘파바를 사회가 받아들이기엔 ‘불편한 존재’로 만들고 맙니다. 결국 사회는 그녀를 ‘위협’으로 규정하고, ‘위키드’라는 악역 서사를 만들어냅니다.

    글린다는 이 상황에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나는 대중이 원하는 마녀상, 다른 하나는 자신의 친구를 향한 미련. 하지만 그녀는 결국 진실을 침묵으로 포장한 쪽에 서게 되며, 오즈의 체제 유지를 위한 얼굴이 됩니다. 이는 ‘침묵하는 다수’, ‘소극적 방관자’의 상징이기도 하며, 진실보다는 질서를 택하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합니다.

    이 서사는 단순히 캐릭터 간의 갈등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의 가치 시스템과 윤리의 문제를 드러냅니다. ‘위키드’는 악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우리가 믿고 있는 ‘선함’이 실제로 얼마나 사회적 요구와 타협되어 있는지를 묻습니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갈라짐은 결국 우정의 끝이 아니라,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선 인간의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 갈림길은 관객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나는 엘파바인가, 글린다인가?”

    뮤지컬 넘버와 영화적 확장: 감정과 메시지를 증폭시키다

    ‘위키드’가 단순히 서사만으로 강력한 작품이 되지 않고, 뮤지컬의 정서를 감성적으로 확장한 이유는 넘버(곡)의 힘입니다. 원작 뮤지컬의 대표곡 Defying Gravity, Popular, For Good 등은 각각 캐릭터의 전환점과 감정의 고조를 완벽하게 담아냅니다.

    Defying Gravity는 엘파바가 체제의 거짓을 폭로한 뒤, ‘나는 더 이상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울려 퍼집니다. 이 장면은 극적 전환점이자, 자기 정체성의 수용과 선언으로, 모든 관객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위해 최첨단 CG와 카메라 워크, 배경 조명을 총동원해, 무대에서 느끼기 어려운 공간적 해방감까지 부여합니다.

    Popular는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인기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으로, 가볍고 유쾌하지만 글린다의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녀는 ‘사랑받는 방법’만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이 장면 속에 녹여냅니다. 유쾌한 리듬 속에 담긴 사회의 여성상 강요 비판 또한 이 넘버의 숨은 메시지입니다.

    For Good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감정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사용됩니다. 이 곡은 단순한 이별송이 아닌, ‘서로의 인생을 바꿨다’는 고백이자 송별의 노래입니다. 서로를 용서하고, 감정을 남긴 채 떠나는 이 장면은 ‘위키드’ 전체를 아우르는 감정적 절정이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과 선택의 존엄성’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뮤지컬 넘버는 영화의 플롯과 정서를 보강하며, 감정선을 시각화하고, 스토리 전개 이상의 감정 몰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단순한 장르적 형식이 아닌, 감정 해설자이자 내면의 목소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위키드’는 뮤지컬 영화 그 이상입니다. 선과 악이라는 틀을 해체하고, 체제에 순응하지 못한 이의 고독과 성장, 우정과 이별의 미묘한 감정을 담아낸 정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서사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각각 진실과 질서, 자유와 인정이라는 선택지를 상징하며, 그들의 대립은 우리 사회와 내면의 선택을 은유합니다.

    화려한 시각적 연출과 강렬한 뮤지컬 넘버는 이 영화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며, 모든 관객에게 감정의 파도를 남깁니다. ‘위키드’는 다시 묻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악이 정말 악인가?” “진실을 말하는 자가 언제나 외면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세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날아오르고 싶은 당신에게, ‘위키드’는 가장 강렬한 응원이 될 것입니다.